1차 대전 의외로 잘 먹고 잘 살았던 독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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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14년 11월.
당시에 협상국이었던 일본군은 중국 칭다오에 주둔중인 독일군을 공격했다.

당시 영일동맹인 상태여서 참전하긴 했지만, 굳이 공격안해도 된다는 입장이었던 영국.
하지만 영국령 홍콩의 세력약화와 독일 동양함대의 존재가 우려 있어
결국 일본에게 공격을 요청한다.


독일군 / 오헝군으로 구성된 주둔군은 고작 4천여명 미만이었고
일본군은 3만여명으로 공격하여
약 일주일만에 독일/오헝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항복하여 포로가 된 독일군들은 일본 본토로 끌려가게 되는데.....




대우가 좋았다.
오히려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솔직히 반독감정도 없고
독일과의 관계가 심하게 틀어지는걸 원하지 않았기에
군과 민간인들에게도 신신당부하여 최대한 대우해 주라는 지시를 했다.
독일군은 약간의 월급을 받고 가족에게도 편지를 보낼 수도 있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나중에는 이 벽안 외국인들에게 자국 홍보를 하겠다고 관광을 데리고 다녔다.

예술가 출신들은 순회공연을 하고 교육을 했다.
이때 일본에 베토벤이 알려지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유행을 했다.

요리사 출신들은 일본에게 소시지, 빵, 디저트 같은 것들을 전파해 주었다.
육류가공 기술 자체가 역사적으로 부족했던 일본은 이때 소시지 덕을 많이 봤고
제대로 된 식사 빵류와 바움쿠헨같은 디저트류가 이때 들어왔다.

일본 애니보다보면 아주 많이 나오는 바움쿠헨

하인리히 프로운드리브라는 사람도 포로로 들어왔다가 석방되고
다시 일본에 눌러앉아 빵집을 개업하기도 했다.

지금도 3대째 운영.

여하튼 일본 내에서는
"도이치 상"이라 불리며 민간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던
요리사, 예술가, 선생님이었다.
1920년 1월
아얘 일본에 눌러앉은 독일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이미 다 죽었을거라 생각하 극동독일군들이 아주 멀쩡하게 돌아오자
독일은 일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끈끈한 외교관계를 이어갔으며
이후에

추축국의 기반이 된다
(중략 심함.)
출처: 루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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